'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'에 대한 연극적인 탐구를 목적으로 2000년도에 시작하여
그 동안 8회에 걸쳐 소기의 성과를 이룩한 <2인극 페스티벌>이 ‘창작2인극 작품전’이란 제목으로
2009년 10월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제9회 페스티벌을 시작한다.- 라고 함
벌써 9회째라니. 몰랐다 이런 참신한 2인극 페스티벌이 있는 줄은...
어쨌든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만난 창작 2인극- 9th 2인극 페스티벌!
칼슘의 맛 그리고... 잊혀진 노래
50여분 가량의 짧은 2인극 2편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.(언제나 그렇듯 thanks to cyan!)
잘 만들어진 따끈한 창작극은, 솜씨좋은 요리사가 개발한 새로운 메뉴처럼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.
먼저, 칼슘의 맛
(작 김 원 / 연출 문삼화 / 드라마투르그 남승연 /극단 뚱딴지)
유쾌하다. 신선하다. 즐겁다.
박사와 조수가 핑퐁처럼-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사와 개그같은 소동들, 그리고 넘치는 유머와 풍자가
흡사 안톤체홉의 '굿닥터:치과의사'를 연상케 한달까.
먼- 그러나 사실 지금도 진행 중인 - 미래의 어느 시점.
식량이 고갈된 미래에 인간은 영양 따윈 무시된,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정체불명의 인공식품으로 연명하는데
한 인공식품회사의 개발실에선 다소 과대망상인 듯한; 박사와 순진하지만 어릿한 신입조수가
인간생명의 필수영양소 중 하나인 '칼슘'을 추출해내기 위해 가열찬 실험 중이다.
딸기맛, 바나나맛, 박하맛... 온갖 인공미(味)가 난무하고
본질은 망각한 채 뒤죽박죽 왜곡된 허상만 남아있는 미래(어쩌면 지금)에선
히로뽕은 흡사 아스피린처럼 복용하고, 목엔 마이크로필터를 이식해야 숨쉴 수 있으며, 암과 에이즈는 감기처럼 찾아온다.
중고심장을 언제든지 갈아끼우고, 피부조차 인공과 자연산이 뒤섞인 이 웃지 못할(실제론 대폭소-할) 부조화의 무대는
50분 내내 온통 조롱과 풍자로 뒤범벅된 광대놀음을 선사한다.
살아있는(완전 귀한!) 멸치'물고기'와 옛 자료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귀한 땅콩을 만능분리기에 넣어
기어이 '칼슘'-이라 부르는 농축액(과연..)을 추출해 낸 박사가 그 신성한 '칼슘' 농축액을
조수에게 마시도록 건네며 번뜩이는 눈으로 묻는 그것.
" 자 어떤가. 칼슘의 맛은?!"
이 지점에서,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되묻게 되는 의문 하나.
왜, '칼슘'도 아니고 '칼슘의 맛'인가.
칼슘의 맛.
끝내 관객에겐 들려주지 않은 그 맛.
한낱 모르모트였을 뿐인 조수의 주검 앞에 칼슘의 맛이 대체 뭐냐며 중얼거리는 박사의 장탄식이
우습고, 씁쓸하다.
이미 왜곡된 세상 속에서 박사에겐 '칼슘의 맛'이란 바로 '칼슘의 본질' 그 자체일 테지.
껍질(맛)에 다다르지 않고는 절대 그 본질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.
그래서 그토록 맛! 맛! 맛! 그 껍데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박사의 우매함.
관객은 웃는다. 나도 웃는다.
하지만 우리는 다를 게 뭔가.
본질, 생명, 자연, 공생,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
허상, 껍데기, 파괴, 탐욕으로 결국 스스로의 숨통마저 조이게 될 인간.
망가져가는 지구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현재진행형이었고,
미디어는 생각 날때마다 환경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다큐를 찍고 마이크를 켠다.
그럼에도 우리는 첨단과학이라 칭하는 것들에 아부하며 무서운 속도로 이 모든 것들을 소비해나간다.
오로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양.
아니지- 인간 존재 조차도 소비와 파괴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게 지금의 현실인까.
의미심장하달 것도 없다.
극은 시종 유쾌하고 가벼운 터치로 쉽게 그 의도한 바를 관객에게 보여준다.
좋다. 꼭 무겁고 심오해야 할 이유는 없잖는가.
당신, 칼슘의 맛을 아시는가?
글쟁이가 글 쓰는데 무슨 의도가 있겠습니까.
어느 날, 느닷없이 '칼슘의 맛'이 무엇일까란 의문이 생겼습니다.
이후 식품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며 느닷없는 의문엔 뼈가 생기고 살이 붙었습니다.
그래서 쓰게 된 작품이 <칼슘의 맛!>입니다.
그렇게 썼습니다. 작가란 인간들이 집필 의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거 있잖아요.
그거 믿지 마세요.
절반 이상이 구라입니다.
그냥 영감 받아 쓴 걸 거예요, 아마도.
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그럴 듯한 구라로 포장해내는 것이 글쟁이의 재주라면 재주이겠습니다.
하지만 독자와 관객인 바로 당신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은 있습니다.
어쩌면, 조각 같은 영감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게 하는 건
바로 당신들 때문일지도 모르죠.
바라옵건대 제가 <칼슘의 맛!>에 집어넣은 작은 메시지를 당신들과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.
그런데요, 칼슘의 맛은 진짜 어떨까요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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