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엘빈'감성쇼크

나생문(羅生門) : 진실 혹은 거짓

by 엘빈 2009. 10. 3.
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 질수없다.
자기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.
이 작품은 그러한 인간,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
거짓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.

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.
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- 나생문 작품설명 中




2009.10.02 금요일 - 추석연휴 첫날.
대학로거리는 한산했지만 극장안은 북적였다.

1996년 유난히 뜨거운 여름을 땀범벅으로 보내게 한
나의 첫 공식작품이었던 - 나생문.

그래서 좀더 각별한 관심이 가는 이 작품을 기어이 이제야 만난다.


이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(羅生門)을 원작으로 먼저 영화화됐고 연극으로 옮겨진 나생문.
번안 희곡에 놀라울 만큼 충실한 이번 극단수의 나생문은
작품을 보는 내내 자꾸만 96년의 여름으로 날 잡아 끌어당겼다.
- 배우의 연기를 보고있자니 벌써 십몇년이나 지난 당시의 대사가 떠오를 정도
  시간을 거슬러 올라간듯한 착각이 들만큼이랄까. 

무사의 죽음- 이라는 살인사건에 각기 다른 진술을 하는 3명의 산 증인과 무사의 영혼까지.
첫 증언까지만 해도 단순했던 사건은 증언이 거듭될수록 미궁으로 빠진다.
기어이 영매의 입을 통한 죽은 이의 진술마저도 거짓임이 드러나고
모든 것이 진실앞에 낱낱이 실체를 드러낸 듯한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
거짓과 변명은 그 교활한 꼬리를 채 감추지 못한다.

결국 우리에게 진실이란, 진정한 진실일 수 없는 것인지.
죽음이 덮치는 순간에도, 아니 죽음 이후에도 나약하고 이기적인 인간은
어리석은 명예-자기보호-위선 그리고 욕망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.

인간의 추악하지만 측은한 본성.

나뭇꾼이 자신의 죄 - 죽어가는 무사의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 자신의 탐욕을 채운- 를 털어놓는 마지막 순간에도
나뭇꾼의 "진실"은 그가 본(또는 행한) 사실의 "전부"가 아닐지 모른다.

그 순간에 조차도 진실은 여전히 미묘하게 왜곡되고 감춰진 채.



슬프다.
그래서 측은하다.


난 어쩐지-
그래도 당신은 게중 가장 나은 인간이오. 라는 나뭇꾼을 향한 스님의 한마디가 위로되지 않는다.


슬프고 측은한 그들.우리.당신.나.